
우크라이나가 미국 등 서방의 강력한 안전보장이 있다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포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영토 문제와 함께 러시아와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한 핵심 사안이었으나, 우크라이나가 대대적인 입장 변화를 보인 것이다.
14일(현지시간) 로이터·AP 통신 등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독일 베를린에서 미국 및 유럽 주요국과 종전안 논의를 앞두고 기자들과 왓츠앱 온라인 메시지를 통한 질의응답에서 “처음부터 우크라이나의 바람은 실질적인 안전 보장을 위한 나토 가입이었다”며 “미국과 유럽의 일부 국가들은 이 방향을 지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공격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로 나토 가입을 헌법에까지 명시해온 점을 고려할 때 큰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시도를 자국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규정해 왔으며, 2022년 2월 전면 침공의 명분으로 제시해왔다.
다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과 러시아의 영토 양보 요구는 단호히 거부했다. 미국은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을 철수시키고 이 지역을 비무장 자유경제구역으로 둘 것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누가 그 경제지대를 관리할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우크라이나군이 5~10㎞ 철수한다면 러시아군도 같은 거리만큼 점령지 안쪽으로 물러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 전선을 기준으로 한 휴전이 공정한 선택”이라며 “러시아가 이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은 알고 있지만 이 문제에 대해 미국이 우리를 지지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만약 이것이 진정으로 공정한 협상이었다면 논의의 초점은 모스크바의 전쟁범죄에 대한 처벌에 맞춰졌을 것”이라며 현재 진행되는 협상이 힘의 논리에 좌우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드미트로 리트빈 대통령실 홍보 보좌관은 “당국자들은 현재 종전안을 검토 중”이라며 “15일 아침 회의를 재개하기로 합의하면서 논의가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다른 유럽 정상들도 15일 독일에 도착해 추가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ZDF 방송과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는 과거 안보 보장에 의존했다가 쓰라린 경험을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에 따라 미국·러시아·영국으로부터 영토 보장을 받는 대가로 핵무기를 포기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실제로 어느 정도까지 안전이 보장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미국의 실질적 관여가 없는 단순한 안보 보장은 별다른 가치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정책 보좌관은 같은 날 러시아 국영방송과 인터뷰에서 “장기적 해법을 두고 다양한 선택지를 논의했지만, 한국식 옵션은 절대로 논의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도네츠크 일부가 비무장지대로 지정되더라도 러시아 경찰과 국가근위대는 해당 지역에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우샤코프 보좌관은 타협을 찾는 과정이 오래 걸릴 수 있다며 러시아의 요구를 반영했던 미국의 제안이 우크라이나와 유럽 동맹국들의 수정으로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박지혜 기자 bjh@bntnews.co.kr





